환경부가 일회용품 사용 규제를 강화하면서 텀블러 사용이 새로운 환경 실천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카페와 공공기관에서 텀블러 할인 혜택을 제공하고, 지자체들은 텀블러 보급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정작 텀블러를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기본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일회용 컵 문제의 심각성
최근 통계에 따르면 국내에서 연간 사용되는 일회용 컵은 약 250억 개 이상에 달한다. 이 중 재활용되는 비율은 10% 남짓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소각되거나 매립된다. 일회용 컵 한 개를 생산하는 데 11g의 CO₂가 배출되고, 소각 시에는 추가로 6g의 온실가스가 발생한다. 연간 일회용 컵 사용으로 배출되는 탄소량은 약 43만 톤으로, 30년생 소나무 6,500만 그루가 1년간 흡수하는 양과 맞먹는다.
텀블러 1회 사용으로 약 17g의 CO₂를 줄일 수 있으며, 1년간 매일 텀블러를 사용하면 약 6.2kg의 탄소 배출을 감축할 수 있다. 기후위기 대응의 관점에서 텀블러 사용 확대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위생 문제가 발목 잡는다
하지만 텀블러 사용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위생 관리의 어려움이다. 외출 중 사용한 텀블러를 제대로 세척할 곳이 없어 많은 시민들이 간단히 물로 헹구거나 아예 세척하지 못한 채 재사용하고 있다.
실제로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한국소비자원 등 여러 전문기관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제대로 세척하지 않은 텀블러에서는 일반 세균 수가 ㎖당 수십만에서 최대 110만 마리까지 검출되기도 했다. 이는 위생 기준치를 훨씬 초과하는 수치다. 위생에 대한 불안감은 텀블러 사용 의지를 꺾는 직접적 원인이 된다.
텀블러 자동 세척기, 검증된 대안
이러한 문제의 검증된 해법으로 텀블러 자동 세척기 보급이 주목받고 있다. 실제로 서울 강남구는 2024년 관내 공공기관과 지하철역 등에 텀블러 자동 세척기 20대를 시범 설치했다. 세척기는 30초 내외로 고온 스팀과 친환경 세제를 이용해 텀블러 내부를 세척하고 건조까지 완료한다.
강남구청이 실시한 이용자 만족도 조사 결과, 응답자의 87%가 "텀블러 사용이 더 편리해졌다"고 답했으며, 82%는 "텀블러 사용 빈도가 증가했다"고 밝혔다.** 편의성이 확보되면 텀블러 사용이 자연스럽게 확대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명확한 증거다.
전략적 배치와 확대가 필요하다
텀블러 자동 세척기는 지하철역, 버스터미널, 공공기관, 대형 상가 등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전략적으로 배치해야 한다. 특히 출퇴근 동선과 점심시간 이용 패턴을 고려한 입지 선정이 중요하다.
경기도는 2025년 민간 기업(LG전자 등)과 협력하여 도내 21개 대학교에 텀블러 세척기를 보급하는 사업을 완료했다.부천시 역시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가톨릭대, 부천대 등 관내 4개 대학을 중심으로 세척기를 우선 설치, 운영하며 '1회용품 없는 캠퍼스'를 조성 중이다.
이는 긍정적인 시작이지만, 시민 전체가 일상에서 변화를 체감하기에는 부족하다. 이제는 대학 캠퍼스를 넘어, 시청, 구청, 도서관, 주요 지하철역 등 공공 다중이용시설로 촘촘한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민관 협력으로 인프라 확충해야
텀블러 세척기 확대에는 예산이 필요하다. 세척기 1대당 설치비는 약 300만~500만 원이며, 연간 유지비(전기, 세제, 수리)는 약 100만 원이 소요 예상된다. 지자체 예산만으로 대규모 보급은 어려운 만큼, 민간 기업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대형 커피 프랜차이즈와 유통기업들은 ESG 경영 차원에서 매장 내 세척기 설치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지자체와 협력하여 공공장소에 설치를 지원한다면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는 동시에 브랜드 이미지도 제고할 수 있다.
행동 변화는 편의성에서 시작된다
환경 보호를 위해서는 시민 개개인의 실천이 중요하다. 하지만 불편함을 감수하라는 호소만으로는 지속가능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없다. 텀블러 사용이 일회용 컵보다 오히려 편리하고 위생적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을 때, 비로소 일회용품 문화를 바꿀 수 있다.
텀블러 자동 세척기 확대는 단순한 편의 시설 설치가 아니다. 시민들의 환경 실천 의지를 구체적 행동으로 연결하는 핵심 인프라다. 정부와 지자체는 텀블러 보급 캠페인에 앞서, 텀블러를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환경 조성에 먼저 투자해야 한다. 인프라가 갖춰져야 문화가 바뀐다.
[녹색환경투데이 편집부]